아무런 설명이 없다면,

안타까울 것도,

초초할 것도 없는 사진 몇장이 있습니다.

 

 

 

자라기 힘든 척박한 자갈밭에서 자라고 있는 기특한 수박입니다.

기대도 하지 못한 장소에서,

기대도 못한 시기에,

어설프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자라는 수박입니다.

 

 

이제는 제법 커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자랐습니다.
참 기특하고 예쁜 수박입니다.
환경이 어렵다고 불평도 없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주어진 환경속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열매를 맺을 것을 기대하지 못한 상황이라,

자그마한 열매가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과 달리 점점 커가는 수박의 크기를 보면서,

혹시나하는 기대까지 갖게 합니다.

처음에는 "빨리커라 내가 먹어줄게"라는 빈말을 던졌는데

이제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맘졸이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열매가 다 익을까?

큰다면 얼마만한 크기까지 클까?

맛은 있을까?

 

 

겉보기에는

따사로운 햇살과, 조용한 일상,

크게 부족할 것 없는 환경...

뭐가 문제냐?
모든 것이 순조롭게 보입니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현실은 냉혹합니다.

 

날씨는 점점 추워져오고,

열매를 맺기에는 양분이 너무 부족합니다.

낮에는 땀이 날 만큼 덥지만,

밤은 점점더 싸늘해져 갑니다.

 

한 낮의 따사로움만 생각하다가는 밤의 추위에 치명상을 입을 겁니다..

 

사실 수박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수박이 익어서 열매를 맺는 것을 바라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이미 늦어버린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리 평화로워 보여도,

큰 기적이 없는 이상 이 수박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좀 아는 농부는 늦게 난 수박에는 처음부터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그냥 뽑아버립니다.

 

그러나 마지막이 그렇게 비참할지라도,

정작 수박 자신만은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내일 서리가 와서 얼어 죽더라도,

마지막 그 순간까지 자신의 할일에

조용히, 끈질기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수박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힘에 사로잡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법이 수박으로 하여금 마지막까지 활동하도록 힘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길,

이 작은 생명의 힘이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작더라도 다음 생명을 이을 수 있는 생명을 맺을 수 있기를...

나도 모르게 간절히 바래 봅니다..

Posted by 작은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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